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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호

미술자료 분야의 독보적인 브랜드





미술자료 분야의 독보적인 브랜드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통의동은 은근히 개성 있는 동네다. 특히 영추문길이라 불리는 작은 거리로 접어들면 양 옆으로 늘어선 낡은 건물들의 모습에 70년대 거리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최근 화랑과 디자인 공방 등이 들어서며 새로운 문화거리로 각광받고 있는 이 작은 거리에 우리나라 미술 자료의 보물창고가 자리잡고 있다. 미술자료 전문가 김달진(53)씨가 설립한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이다.
작년 5월 문을 연 이곳은 허름해 보이는 한 건물의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 도서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60평이라는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늘어서 있는 서가마다 서적, 잡지 등 다양한 종류의 미술자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개인이 모은 자료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방대한 분량의 미술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모습에 누구든지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이곳에서 김달진씨를 만났다. 자료 정리에 분주한 모습에서 미술자료의 대가다운 모습이 느껴졌다.
김씨는 미술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38년의 세월을 미술자료 수집에 헌신해온 덕분이다. 이제 미술자료하면 모두들 그를 떠올릴 정도로 그의 이름 석자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20년 가까이 국립현대미술관,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에 근무하며 자료 전문가의 역량을 쌓았던 그는 2001년 김달진 미술연구소를 열고 본격적인 미술정보사업에 착수했으며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건 자료박물관까지 열기에 이르렀다.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미술자료 수집과 정리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미술정보지 「서울아트가이드」를 매달 발행해 무료로 배포하고 미술정보 사이트 “달진닷컴(www.daljin.com)”을 운영하며 미술정보 제공에도 앞장서고 있다.
“어릴 때부터 화폐, 우표 등 물건 모으는 일을 유난히 좋아했어요. 고교 시절에는 「여원」 「주부생활」 등 여성 월간지의 “이달의 명화” 코너에 관심을 갖고 매달 그 그림들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미술자료 수집의 시작이었던 것이죠.”
그후 수집의 폭이 넓어지면서 그에 대한 열정도 뜨거워졌다. 미술자료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인정받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자료수집을 위해 매주 금요일만 되면 쇼핑백을 어깨에 매고 화랑가를 누비곤 했다. 제공되는 자료들만 받을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때문에 “금요일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근무하는 동안 그는 미술자료 전문가로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집한 미술자료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국내 미술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글들을 발표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은 38년 간에 걸친 김씨의 수집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단행본 및 작가화집 7500여 권, 100여 종의 정기간행물 2500여 권, 팸플릿 1만 여 점을 비롯해 미술학회지, 논문 등 각종 미술자료들이 비치되어 있다. 그중에는 1928년 발행된 국내 서화가 인명사전 「근역서화징」, 최초의 원색 도판 화집인 「오지호 김주경 2인 화집」(1938) 같은 희귀자료들도 있다.
그는 자료박물관이 하고 있는 역할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우선 국내 현대미술의 기초 사료(史料)를 매년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자료라 할지라도 정리되고 나면 나중에는 훌륭한 역사가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하나의 역할은 이곳에 축적된 양질의 미술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주 3회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을 통해 이용자들은 필요한 미술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받을 수 있으며 정보지 「서울아트가이드」와 정보사이트 “달진닷컴”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정보 이용이 가능하다.

“취미로 시작했던 자료 수집 활동이었지만 이제는 그 결과물이 사회에 환원되고 있어요. 저 혼자만 즐기면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그 자료들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또한 미술자료의 수집과 분류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하지요.
그렇지만 그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60평 규모의 이 박물관은 그의 꿈을 펼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들여 놓지 못한 채 고향 집에 쌓여 있는 자료가 여전히 수두룩하다. 게다가 새로운 자료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보다 넓은 공간의 확보가 시급한 시점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 빨리 이 박물관이 국제적 규모의 미술정보센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지원이다. “사실 건물 공간을 지원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자료와 운영 노하우는 저희 미술연구소와 자료박물관이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거든요.”
그가 꿈꾸는 미술정보센터는 무엇보다도 접근성이 용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는 국내 미술 중심지이자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인사동을 최적의 장소로 생각하고 있다. 그곳에 100여 평 규모의 자료박물관을 비롯해 열람실, 홍보관, 북카페 등을 갖춘 미술정보센터를 세울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미술정보센터는 미술사 자료의 구축과 공유, 신뢰성 높은 자료 제공 및 가공, 전문적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국내 미술 행사의 국내외 홍보 창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술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편리하게 미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 미술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공립 미술관의 1년 예산 중 자료구입비가 1%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어요.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전시, 행사 등에만 치중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이제부터라도 예술 발전의 근간이 되는 자료문화 인프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내실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38년 동안 미술자료 수집이라는 한 우물만 파오며 이 분야의 최고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그에게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게 된 비결을 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요. 그리고 그것이 자기만족에서 끝나면 안 되고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어야 해요. 그러한 성과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쌓아올려 가야지요.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 미쳐야 해요. 미치지 않고서는 한 분야의 베스트가 될 수 없으니까요. 저는 미술자료 수집가로서 정말 누구보다 많은 발품을 팔아가며 수집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자신이 미쳤다고 말한다. 여전히 그는 미쳐 있다. 그러한 열정이 현재의 김달진을 있게 한 비결이자 바로 브랜드 김달진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공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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